“아주머니도 편하게 사시는 것 같지 않은데 왜 이렇게 주세요?” “나? 나는 고향에 맨션이 있어.” 심드렁한 말투로 아주머니가 받아쳤다. “네? 저도 그 맨션에 가 볼 수 있나요?” 사람들은 아주머니가 숨겨놓은 부자라며 수근댔다. “없어!” “왜요?” “아버지가 다르잖아! 나는 아버지가 한 분이 아니라 두 분이거든.”
예수님이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오신 것처럼, 우리도 그 발자취를 쫓아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됐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즐거움으로 질 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북한의 백성과 남한의 백성을 진정으로 위로하며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게 될 그날을 향해 전진 또 전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