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도 느리고 말도 생각도 느립니다.
앞서가는 것을 싫어하고 맨 끝에 머물러 있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나보다 빨리 앞서가는 것이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뒤에서 빵빵거리면 비켜 주면 됩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꼬물거리며 하나씩 감당하는 게 편합니다.
일생 동안 그렇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런 느림보를 중국 이곳저곳을 다니게 하시고 성경 배달을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한 권 한 권씩 가방에 쓸어 넣고 카트에다 싣고는 꾸물꾸물 이동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사람들이 눈여겨 본 것 같지 않습니다.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배달됐습니다.
느림보의 한 걸음 한 걸음으로 37년을.
엄격히 말하면 1983년에 처음 배달하고 198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느림보답지요.
2년이나 걸린 데에는 핑계야 있지요.
일도 해야 하고, 선교회 등록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인지를 확인해야 했지요.
일곱 살에 어머님으로부터 들었던 “북한 가라”는 말을 70년 동안 새기며 살아왔습니다.
천천히 지금까지 꾸물거리면서요.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느림보의 발걸음으로 열매를 볼 수 있었으니 복이지요?
중국 한족과 조선족, 소수민족에게서 열매를 보았습니다.
북한과 몽골에서도 열매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열매는 선교사와 목사와 사역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능력 있는 이의 설교나 선교보고가 아닌 느림보의 발걸음과 보고로 인해 열매가 달렸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을 통해 어떤 열매가 달릴지 기대되지 않으세요?
주기철 목사의 간증문을 읽은 범브란트 목사의 헌신.
한국 교회 성도의 기도를 듣고 아랍 선교를 하는 한 아랍인.
누구나 보고 들었을 법한 내용인데 어떤 이가 읽느냐로 삶이 새롭게 됩니다.
저 같은 느림보도 어머니의 말 한마디를 귀담아 듣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까요.
9월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16개국의 기도자들이 강화훈련원에 모여서 북한을 용서하는 연합기도회를 갖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이것뿐인가요?
복음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을 하나님이 문을 여실 때 북한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사역자로 세워줄 트라우마 상담 훈련도 2주에 걸쳐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북한과 중국과 이스라엘과 인도차이나에 선교사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도록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선교에 함께하시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